천벌 같은 건 없다
『김남주 평전』에서 받은 위로와 격려
(본 칼럼은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아버지의 해방일지』와 『김남주 평전』이 올해의 5.18 문학상을 받는다. 정지아의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는 베스트셀러라 굳이 소개할 필요가 없지만 『김남주 평전』은 그렇지 않다. 시‧소설‧평론을 가리지 않고 쓰는 저자 김형수는 꽤 오래전부터 부여의 신동엽 문학관 관장으로 일해 왔다. 『김남주 평전』은 그가 『문익환 평전』과 『소태산 평전』에 이어 세 번째로 쓴 전기 작품이다.
5월은 어버이날과 어린이날이 있어서 ‘가정의 달’이라고 하지만 내겐 아니다. 나는 부모님을 다 떠나보냈다. 내 아이들은 어린이를 벗어난 지 오래다. 아직은 어버이 대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런 나한테 5월은 ‘역사의 달’이다. 광주민중항쟁을 기리고 노무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시간이다. 『김남주 평전』은 그런 계절에 읽기 좋은 책이다. 김남주의 삶과 죽음이 그렇고, 김남주의 시도 그러하다. 한동안 잊고 지냈던 시인을 평전에서 다시 만났다. 그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세상의 변화 때문에 심란해진 나를 위로했다.
“자신이 자유로운 존재임을 잊지 않는다면 대통령 자리에 앉은 어떤 남자의 어리석고 기괴한 행위가 너의 존엄을 해치지 못할 거야!”
그 위로를 독자들께 전하고 싶다.
전선(戰線)의 시인
김남주는 1945년 10월 전남 해남군 삼산면에서 태어났다. 해남 읍내에서 대흥사 가는 길에 있는 마을이다. 어머니는 동네 지주의 딸, 아버지는 바로 그 집의 머슴이었다. 시인의 외할아버지가 한쪽 눈 시력을 잃은 딸을 말수 적고 성실한 머슴과 맺어주었다. 부모는 평생 글을 몰랐지만 김남주는 시인의 운명을 타고났다. 시인이 되는 것을 목표로 삼은 적은 없었다. 숨을 쉬듯 자연스럽게 사람과 세상과 삶에 대한 생각과 감정을 문자로 옮겼을 뿐이다. 시인임을 내세우지 않았고 누가 시인으로 대접하면 손사래를 쳤다. 그의 주관적 정체성은 시인이 아니라 전사(戰士) 또는 혁명가였으며, 1994년 2월 췌장암으로 삶을 마감한 때까지 흔들리지 않았다.
그러나 내게 김남주는 전사가 아니라 시인이다. 살아서나 죽은 뒤에나 다 그렇다. 계간 『창작과 비평』에 시 여덟 편을 공개한 1974년 여름, 그는 단박에 김지하에 버금가는 당대의 시인으로 떠올랐다. 냉정하게 말하면 시 말고는 세상의 변화에 힘을 보탤 능력이 없었던 사람이다. 그를 가리켜 ‘전선의 시인’이라고 한 저자의 말에 동의한다. 하지만 나는 ‘전선’이 아니라 ‘시인’에 무게를 둔다. 시인은 어디에 있든 시인이다.
시인 김남주는 어떤 전선에서 복무했는가? 적어도 남조선민족해방전선은 아니었다. 남민전 사건으로 1979년 10월부터 1988년 12월까지 9년 넘게 옥살이를 했지만 나는 그 조직을 김남주 시인의 전선이었다고 보지 않는다. 남민전은 온몸 가득 억압과 불평등에 대한 분노를 채운 인간 김남주가 시대의 어둠에 길을 잃고 절망감에 쫓기다 들어섰던 골짜기였을 뿐이다. 그는 자유와 존엄을 찾는 전선에서 싸우면서도 전선의 지형을 잘못 읽었고 싸움의 성격을 오해했다. 아래는 데뷔작 가운데 하나인 시 「잿더미」의 일부다.
보리는 왜 밟아줘야 더
팔팔하게 솟아나던가
잡초는 어떻게 뿌리를 박고
박토에서 군거하던가
곰팡이는 왜 암실에서 생명을 키우며
누룩처럼 몰래몰래 번식하던가
죽순은 땅속에서 무엇을 준비하던가
뱀과 함께 하늘을 찌르려고
죽창을 깎고 있던가
청년 김남주는 박정희의 유신쿠데타를 비판하는 지하신문 <함성>을 제작 배포한 일로 체포되어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여덟 달 동안 구금되었다가 풀려난 직후 이 시를 썼다. 문단에 데뷔하기 전부터 그는 자유의 전선에서 글로 독재 권력과 싸웠다.
자유에 대하여
나는 인간 김남주를 좋아하고 그가 쓴 시를 사랑한다. 사람이 훌륭해도 시가 그만 못한 경우가 있다. 시는 훌륭한데 사람은 그렇지 않은 경우 또한 없지 않다. 김남주는 삶과 시 모두 매력이 있다. 오래전 시인 윤동주는 「쉽게 써진 시」에서 자신을 이렇게 질책했다.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김남주는 「시를 쓸 때는」이라는 작품에서 같은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드러냈다. 타고난 시인은 쉽게 시를 쓰고, 그 때문에 스스로를 학대하는 것 같다.
시가 술술 나오는구나
거미줄이 거미 똥꾸멍에서 풀려나오듯이
막힘없이 거침없이 빠져나오는구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나 같은 놈에게
멋도 없고 가락도 없고 서정도 없는 엉터리 시인에게
김남주의 시를 읽으면 저절로 윤동주와 이육사 같은 분이 떠오른다. 그런데 다른 점이 있다. 그는 자신을 시인이 아니라 전사로 여겼다. 그래서 시가 쉽게 나오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마음으로 쓰는지 같은 시에 토로했다. 문학사에서 얻을 위상이나 문단의 평가 따위에 아무 관심이 없었다. 자신을 시인이 아니라 전사로 여겼으니 당연한 일이다.
시인이여 박해가 극에 달해 있어 아슬아슬
백척간두에 모가지를 걸고 있는 자유대한의 시인이여
전후좌우 살피지 말라 시를 쓸 때는
시를 쓸 때는 어둠으로 눈을 가리고 써라
공포탄으로 귀를 막고 침묵 속에서 써라 내일 아침이면
뜨는 해와 함께 밑씻개가 되기 위하여 오늘 밤에 써라
쓰는 족족 어둠으로 지워가면서 써라 찢어가면서 써라
사후의 부활? 아나 천주학쟁이 너나 먹어라 내던져주고 써라
사후의 평가? 아나 비평가 너나 처먹고 입심 길러라 하고 써라
김남주는 도대체 왜 시를 썼는가? 자유로운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엄을 실현하려고, 같은 세상을 사는 동시대의 사람들에게 그 이야기를 하려고 썼다. 나는 그렇게 그를 이해한다. 다음은 시 「자유에 대하여」의 일부다. 여기에 그는 맹자가 말한 ‘호연지기(浩然之氣)’, 모든 속박을 뿌리치고 스스로 자신을 해방한 자유인의 마음을 터뜨렸다.
자유를 내리소서 자유를 내리소서
십자가 밑에 무릎 꿇고 주문 외우며
기도 따위는 드리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대지의 자식인 나는
자유 좀 주세요 자유 좀 주세요
강자 앞에서 허리 굽히고 애걸복걸하면서
동냥 따위는 하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직립의 인간인 나는
왜냐하면 자유는
하늘에서 내리는 자선냄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왜냐면 자유는
위엣놈들이 아랫것들에게 내리는 하사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 시대와 작별하며
김남주의 시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어떤 때는 독자를 나무라고 야단치는 것 같다. 예컨대 아래 작품이 그렇다.
앉아서 기다리는 자여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엉거주춤 똥 누는 폼으로
새 세상이 오기를 기다리는 자여
아리랑 고개에다 물찌똥 싸놓고
쉬파리 오기를 기다리는 자여
-시 「똥 누는 폼으로」 전문
엉거주춤한 자세로 이도저도 아닌 인생을 산 나는 시인의 말을 군소리하지 않고 듣는다. 그러면서 혼자 말한다. “인간이란 게 본디 그렇게 엉거주춤한 존재더라고요. 난 어떨 땐 앉고 어떨 땐 서고, 어떨 땐 앉지도 서지도 못하고 살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요. 그래도 그렇게 말해주신 덕분에 내가 그렇다는 걸 알았으니, 고맙습니다.” 그렇다. 김남주의 시는 나를 있는 그대로 보게 하는 힘이 있다. 김남주의 시는 또한 때로 찌를 듯 험하고 날카롭다. 잘못 만지면 다칠 것 같다. 다음 시를 보라.
장군들, 이민족의 앞잡이들
압제와 폭정의 화신 자유의 사형집행인들
보아다오 보아다오 보아다오
살해된 처녀의 머리카락 그 하나하나는
밧줄이 되어 너희들의 목을 감을 것이며
학살된 아이들의 눈동자
그 하나하나는 총알이 되고
너희들이 저질러놓은 범죄
그 하나하나에서는 탄환이 튀어나와
언젠가 어느 날엔가는
너희들의 심장에 닿을 것이다
-시 「학살3」 부분
그래도 나는 김남주의 시가 좋다. 김형수가 말한 것처럼, 그의 시는 ‘한 시대의 심미적 표상’을 창조했다. 나는 그와 같은 시대를 지나왔다. 그런 시대를 만나지 않았다면 상상만 할 수 있었을 감정을 몸으로 느껴 보았다. 대단한 그 무엇은 아니었을지라도 그 감정을 만났기에 보잘것없는 인생에 작은 의미를 더할 수 있었다. 독재정권의 후예들, 한통속인 언론 종사자들, 그리고 진보진영의 일부 젊은 정치지망생들까지 덩달아 신종 기득권 세력이라 비난하며 함부로 돌을 던져대는 소위 86세대는 다, 고뇌하고 번민하고 분노하면서 자신의 시대를 건넜던 1980년대의 청년이라면 누구나, 시인이 「그날 밤을 회상하면」이라는 시에 표현한 두려움과 자기 비하의 감정을, 작지만 소중한 성취의 기억을 되살려낼 수 있을 것이다.
환청이었을까 ‘어이 학생’ 하는 소리에
환각이었을까 목덜미에 닿을 것 같은 검은손의 촉감에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발걸음이 빨라졌고
급기야는 뛰기 시작했다
뛰면서 나는 생각했다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칵 뒈져나 버려라 이 겁보야
(중략)
그날 밤 나는
나에게 맡겨진 임무를 성공적으로 끝냈다
아 그날 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하나 얼마나 아름다웠던가
그렇다. 김남주의 시는 ‘한 시대의 심미적 표상’을 창조했다. 그러나 그는 떠났고 그 시대는 지나갔다. 김형수 시인은 왜 지금 『김남주 평전』을 쓴 것인가? 인간과 역사와 예술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품격을 지키면서 한 시대와 작별하기 위해서다. 그는 김남주를 모르는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김남주의 시를 골라 평전에 실었다. 그의 시와 산문에는 ‘한 시대의 심미적 표상’을 넘어 인간 존재의 심연을 드러내는 메시지가 있다. 그것을 챙겨 다음 세대에게 넘겨줌으로써 나와 동갑인 작가 김형수는 우리의 시대와 의미 있게 작별하려는 것이다.
나라 안에서는 검찰권이라는 ‘합법적 폭력’을 마구잡이 휘두르면서, 국가의 자주와 국민의 자존을 미국 대통령과 일본 총리 발아래 굴리는 대통령의 행태를 나는 우습게 여긴다. 탱크와 총칼과 최루탄과 고문과 백골단의 몽둥이를 겪은 우리 세대가 보기에 고소‧고발과 검찰권으로 만사에 대처하려는 정권의 행태는 장난감 총으로 하는 병정놀이와 같다. 1975년 4월 9일 새벽 박정희는 대법원 확정판결 하루 만에 인혁당과 민청학련 사건 관련자 8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다들 박정희가 천벌을 받을 것이라 했지만 김남주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천벌 같은 건 없다. 이것이 세계의 참모습이다.
그렇다. 윤석열 대통령과 그 오른팔 왼팔들에게도 천벌 같은 건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정부가 한 시대를 마감하는 적절한 형식일 리도 없다. 모든 일은 사람이 한다. 김남주 시인은 하늘에 대고 무엇인가를 빌 필요는 없다고, ‘직립의 인간’으로서 자신의 힘으로 원하는 것을 이루라고 말한다. 이처럼 당연한 말이 위로가 된다니!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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