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 폭력, 횟수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 증언
피해 학생 극단적 선택 시도에도 반성 의지 없어
서면사과 제출하랬더니 A4 3분의 1 달랑 제출해
12일 수업 빠지면 안 된다며 징계 이행도 불성실
강제전학 불복해 끝까지 재판…3학년 돼서야 전학

사필귀정(事必歸正)인가. 신임 국가수사본부장(국수본부장)에 임명된 정순신 변호사가 임기 시작을 하루 앞두고 사의를 표명하게 만든 아들 정모 군의 학교폭력(학폭) 문제는 재판부도 "결코 경미하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할 정도로 피해 학생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힌 사건이었다.
정 군은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 "빨갱이 새끼" 등 언어 폭력을 일삼아 피해 학생인 A 군이 정신과 치료를 받았지만, 정작 사과문은 A4 용지 3분의 1정도에 성의없는 필체로 제출했다. 또 징계 수위가 낮아지자 A 군을 험담하는 한편 "변호사를 선임해서 무죄판결을 받았다"며 자랑스럽게 떠들고 다녀 A 군에게 2차 가해를 했다.
아울러 정 군의 모친은 학교 측이 정 군에게 요구한 교내 봉사와 출석 정지 등 징계조치에 대해서 이를 수행하느라 '12일의 수업'을 못 받으면 정 군의 학교 생활이 엉망이 된다며 미뤘다고 말했다. 피해 학생인 A 군은 수개월째 학교를 나오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반성보다는 본인 자녀의 '12일의 수업'이 더 중요했던 셈이다.
"언어 폭력, 횟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
25일 <시민언론 민들레>가 입수한 정 군의 학폭 소송 1심 판결문(춘천지방법원 제1행정부, 재판장 성지호·류하나·문지용)에는 2017년 5월쯤부터 2018년 1학기 초까지 정 군의 학폭 사건에 대한 학교의 조사 보고서와 피해 학생 및 주변 학생들의 진술 등이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판결문에 실린 학교폭력 사안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정 군은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2017년 1학기 체력검사 이후부터 A 군에게 '돼지새끼'라는 폭언을 시작했으며 "제주도에서 온 돼지새끼" "빨갱이 새끼" 등 발언도 여러 차례 했다. 한 학생은 조사에서 "A 군의 아버지가 제주도 출신이라는 것을 가지고 '빨갱이'라는 말을 쓴 적이 있다"고 증언했다.
또 정 군이 A 군에게 "더러우니까 꺼져라"라는 말도 자주했다는 내용도 보고서에 담겨 있다. 정 군은 점심 식사를 하는데 A 군이 같은 식탁으로 와서 앉으려고 하면 표정을 찡그리면서 "더러우니까 꺼져라"라고 말했다. 주변 학생들은 이 같은 발언에 대해 "횟수를 세는 것이 무의미할 정도로 자주 했다"고 증언했다.
A 군은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학폭위)에서 정 군이 "왜 인간이 밥 먹는 곳에 오냐? 구제역 걸리기 전에 꺼져라" "넌 사료나 먹어야 한다" 등의 발언을 했다고 진술했다. 이어 "처음엔 장난인가라고 생각했지만 그게 어떻게 장난이냐"며 "(정 군에게) 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러면 더 힘들게 하고 나중에는 익숙해졌다"고 했다.
또한 A 군은 2017년 2학기 기숙사 방을 같이 쓰려고 했다가 무리에서 빠지게 되어 정 군의 방에 자주 놀러 갔는데, 갈 때마다 정 군은 짜증을 내면서 "꺼져라"라고 말하거나 "넌 돼지라 냄새가 난다"고 했다. 두 사람은 같은 동아리 회원이기도 했는데, 정 군은 A 군이 말을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아리에서 내보냈다.
이러한 폭언은 2학년이 되어서도 이어졌다. 정 군은 학교 후배들과의 만남 행사에서 A 군을 향해 "돼지는 가만히 있어"라고 말하거나, 다른 동아리를 언급하며 "너는 배구동아리에 들어간 게 그 동아리 애들한테 미안하지도 않냐. 그 동아리 나가라"고 발언했다.
주변 학생은 학교 조사 과정에서 "A 군으로서는 후배들 앞에서 자존심이 상하고 상당히 치욕스러웠을 것이라고 생각된다"고 진술했다.

"피해학생, 극단적 선택 시도했지만…반성도 없어"
정 군의 괴롭힘에 동조한 다른 가해자 학생도 나왔다. 정 군과 다른 가해자의 괴롭힘은 갈수록 심해져 A 군은 정 군과 다른 가해 학생 이름만 언급되어도 패닉(온 몸 떨림 현상)에 빠졌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의 극심한 불안과 우울을 겪었다고 학교폭력 사안조사보고서는 밝혔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내신 30%였던 A 군의 성적은 학사경고를 받을 정도로 하락했다.
A 군은 2017년 12월 말 부터 정신과 병원 치료를 받기 시작했고 자살 위험 진단을 받았다. 겨울방학 후 학교로 복귀해 생활했지만 학교 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상태가 악화돼 2018년 2월에 귀가했으며, 같은 해 3월에는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병원에서 내린 A 군의 진단명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PTSD), 중증도 우울에피소드, 공황장애(우발적 발작성 불안), 적응장애 등이었다.
결국 A 군은 2018년 3월 7일 학교에 서면으로 정 군의 학폭 행위를 신고했지만, 정 군은 "A 군이 상처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못했다" 등의 발언을 하며 반성의 여지를 보이지 않았다. 같은 해 3월 22일 열린 학폭위 회의록에는 학폭위 위원이 "가해학생이 깊이 반성하고 진실을 모두 말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점이 너무 유감스럽다"고 말할 정도였다.
학폭위는 △전학 △서면 사과 △특별교육 이수 10시간 △학부모 특별교육 이수 10시간 조치 등을 결정했지만, 정 군의 모친은 전학 조치에 불복해 강원도학생징계조정위원회(조정위)에 재심을 청구했고 조정위는 같은 해 5월 3일 "전학조치를 취소한다"는 재심 결정을 했다. 전학을 면한 정 군은 징계를 받았지만, 그 뒤로도 여전히 반성하는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같같은 해 5월 28일 학폭위에 참석한 위원회 간사 교사는 정 군의 서면 사과문에 대해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A4 용지 3분의 1 정도 제대로 된 서식도 없이 써 가지고 왔다"고 말했다. 한 위원은 "서면 사과의 양 그리고 필체나 이런 것이 정성이 전혀 안 들어가 있는 듯하다"라며 "충분히 받는 사람이 진정성이 느껴질 수 있도록 그렇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A 군은 학폭위에서 정 군에 대해 "진짜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애는 처음 봤다"며 "저에 대한 나쁜 이야기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기가 변호사 선임해서 무죄판결 받았다고 떠들고 다닌다"고 진술했으며, 학교 측은 정 군에게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학폭 사건에 대해 언급을 하지 못하도록 추가 조치했다.
이 같은 발언들은 학폭 사건과는 직접 상관은 없지만 평소 정 군의 언행과도 연관이 있어 보인다. 학교폭력 사안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정 군은 평소 아버지가 검사라는 사실을 자랑하며 '검사라는 직업은 다 뇌물을 받고 하는 직업이다' '판사랑 친하면 재판에서 무조건 승소한다' 따위의 발언을 했다.

"교내봉사 징계하면 12일 수업 못 들어 학교생활 엉망"
정 군뿐만 아니라 정 군의 모친 역시 사안의 심각성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다. 전학을 제외한 재심 결정에 불복한 A 군 부모의 재심 청구에 의해 열린 2018년 6월 29일 강원도학교폭력대책지역위원회에서 정 군의 모친은 학교가 내린 징계를 가볍게 여기는 듯한 답변을 늘어놨다.
정 군의 모친은 위원회 위원들이 '징계 조치를 다 이행했느냐'고 묻자, "교내 봉사하고 출석 정지 부분은 기말고사 바로 앞과 뒷 부분이다. 그걸 다 받으면 12일의 수업을 못 듣게 되니까 (학교 생활이) 완전히 엉망이 되어버리는 상황이다. 그래서 현재 미뤘다"고 답했다.
이에 한 위원은 "처분받은 12일 동안 그것을 이행하면 고등학교 생활이 마비가 온다, 흔들린다고 말씀을 했는데, 피해 학생은 1학기 내내 학교를 못 나온다"고 지적했다. 다른 위원도 "의견서 제출하신 것을 읽어 봤다. 아마도 잘못했다고 안 하시는 것 같다"며 "사람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은 정말로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고 질타했다.
정 군의 반성 태도 역시 계속 지적됐다. 당시 회의에서 한 위원은 정 군에 대해 "피해 학생에 대한 진술을 받는 과정에서도 피해 학생을 무시하는 태도가 있었다"면서 "학교 폭력이 문제가 돼서 왜 그랬느냐고 선생님 앞에서 말하는 자리에서도 무시하는 태도가 있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학폭위에 학교 측을 대변해 참석한 교사도 "정 군이 반성을 전혀 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 군의 부모에 대해서도 "책임을 인정하는 것을 되게 두려워해서 2차 진술서 같은 경우는 부모님이 전부 코치해서 썼다"며 "어떻게든 책임 회피하는 모습을 보여줬기 때문에 교사 입장에서는 많이 실망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강원도학폭위는 "학생이 반성을 안 했다는 점, 피해 정도가 심하다는 점, 학교 측 의견을 종합해 볼 때 강제 전학이 필요하다"며 '전학'을 징계에 다시 포함해 심의·의결했다. 이에 정 군과 정 군 부모는 같은 해 춘천지법에 재심 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냈지만 같은 해 9월 4일 재판부는 정 군의 청구를 기각했다.

소송서도 변명으로 일관…"언어폭력 인과관계 없어"
소송에서도 정 군은 개전의 여지를 전혀 보이지 않았다. 정 변호사가 아들의 법정대리인을, 정 본부장의 사법연수원 동기가 소송대리인을 맡았다. 정 군의 변호인은 "A 군이 정 군이나 주변 친구들에게 이의나 불만을 제기하지 않은 채 웃어넘겼고, 이에 정 군은 자신의 행동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며 "3~4회 정도 '꺼져라'는 취지로 말을 하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A 군의 정신적 피해에 대해서도 "본인의 기질이나 학업 관련 스트레스가 피해 학생의 상태에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도 있으므로, 정 군의 언어폭력과 피해 학생의 피해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고도 볼 수 없다"며 책임을 A 군에게 돌렸다. 학교의 처분에 대해서도 "개전의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처분한 것은 지나치게 가혹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재판부는 정 군의 행위에 대해 "학교폭력예방법상 학교 폭력에 해당한다"며 "고등학교 1학년인 정 군이 본인 행위의 문제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변명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밝혔다. 또 "학교폭력 행위와 피해 사실 사이에 인과관계는 충분히 인정된다"며, 학교 처분에 대해서도 "재량권이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정 군은 1심 판결에 불복해 항소하고, 전학조치 등 효력을 중단해달라는 집행정지 신청을 2심 재판부에 냈다. 하지만 2심을 심리한 서울고등법원 춘천제1행정부도 마찬가지로 항소를 기각했다. 정 군은 불복해 대법원까지 갔지만 2019년 4월 심리불속행 기각 판결을 받았다. 이러한 사이 정 군은 고등학교 3학년이 돼서야 전학 조치됐고, 그는 결국 서울대에 진학했다.
이로 인해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서는 아들의 학교생활기록부에 학폭 사실이 기재되는 걸 지연시켜 입시에 활용하려고 집요하게 소송전을 펼친 것이라는 의혹이 확산됐다. 정순신 변호사는 이날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아들은 서울대에 정시 전형으로 합격했다. 강제전학을 갔기 때문에 (학교폭력 결과를 반영하는) 수시로 대학에 갈 수 없었다"고 해명했다.

정순신, 임기 시작 하루 앞두고 사의…"두고두고 반성"
언론과 SNS 등을 통해 자녀의 학폭 문제가 일파만파로 불거지면서 정 변호사는 결국 이날 사의를 표명했다. 정 변호사는 전날 윤석열 대통령에 의해 정식 임명됐으나 아직 임기를 시작하지 않아 국수본부장 공모 지원을 철회하는 방식으로 사의를 전했다.
정 변호사는 입장문을 통해 "아들 문제로 국민들이 걱정하시는 상황이 생겼고 이러한 흠결을 가지고서는 국가수사본부장이라는 중책을 수행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며 "국가수사본부장 지원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어 "아들 문제로 송구하고 피해자와 그 부모님께 다시 한번 용서를 구한다"며 "저희 가족 모두는 두고두고 반성하면서 살겠다"고 했다.
정 변호사가 물러났지만 여파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인사검증 과정에서 자녀 학폭 사건을 제대로 걸러내지 못하고 정 변호사를 국수본부장에 추천한 윤희근 경찰청장, 인사 검증 책임이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 대해서도 책임론이 불거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책임론은 여당에서도 제기되고 있다.
국민의힘 3·8 전당대회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한 천하람 후보는 "이런 문제가 인사 검증 과정에서 밝혀졌다면 절대 임명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며 "대통령의 신임이 두터운 검사 출신이라고 해서 검증의 칼끝이 무뎌졌던 것은 아닌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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