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 도우미'로 변신한 운동권 출신들
조선일보 구미에 맞게 대신 침 뱉어주는 역할
김경율‧민경우‧한지원‧이수봉…'내부 고발'로 포장
마녀사냥 측면지원, 옛 동료들 등에 칼 꽂기 앞장
수구‧극우 편에서 진보적 사회운동 공격을 정당화
"조국과 윤미향 때문"? 설득력 없는 핑계 우려먹기
정치적 포지션 자체를 바꿔 윤석열 정권 지지 나서
(본 기사는 음성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최근에 미국 <폭스뉴스>가 악의적 허위 보도 때문에 어마어마한 배상금을 지불하게 됐다는 소식을 듣고 일부 사람들은 <조선일보>를 떠올렸을 것이다. 트럼프 같은 우익 정치인들을 도우면서 사회적 약자들을 공격하며 각종 선정적이고 무책임한 가짜뉴스를 유포해 온 <폭스뉴스>의 행태를 '미국판 조선일보'라고 비교하는 주장들이 꽤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악의적 가짜뉴스와 보도 행태를 막기 위해서 언론개혁 지지자들이 '언론중재법'을 추진했을 때 '언론의 자유'를 말하며 앞장서 막아선 것이 <조선일보>였던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번 <폭스뉴스>의 경우는 악의적 허위 보도에 대해 막대한 손해배상금을 부과하자는 언론중재법의 취지와 매우 유사하다.
그런데 <폭스뉴스> 사례를 보도하며 <조선일보>는 원래처럼 '언론의 자유 침해'라고 비판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이 사례를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는 사람들에 대한 공격거리로 포장한 다음에 준엄하게 "한국처럼 가짜뉴스가 횡행하는 나라는 드물 것"이라는 논평들을 내놓았다. 놀라운 유체이탈 화법이었다.
이처럼 언제나 예상을 뛰어넘는 <조선일보>를 꾸준히 보다 보면 몇 가지 패턴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노동운동과 시민운동 출신 인사들의 입을 빌려서 함께하던 곳에 침을 뱉고 공격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과거에 '운동권'이었지만, 지금은 그곳을 욕할 준비가 돼 있는 사람들은 높은 몸값을 매겨서 모셔간다.
최근 몇 년간에도 참여연대 공동집행위원장 출신의 김경율 씨, '조국통일 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 출신인 민경우 씨, 사회진보연대 부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이었던 한지원 씨 등의 사례가 있었다. 요즘에는 주로 주말 특집으로 그런 사람의 인터뷰를 싣고 있는 패턴이 발견된다.
그래서 주말이 다가오면 이번 주말에는 누가 등장할 것인가가 괜스레 궁금해지는데, 최근 <조선일보>의 이러한 주말 '특집'에 얼굴을 내민 것은 이수봉 씨였다. 이수봉 씨는 좀 세월이 지나긴 했지만 민주노총에서 대변인, 정책연구원 원장, 사무부총장까지 했으니 <조선일보>로서는 꽤 만족스러운 기획이었을 것이다.
이수봉 씨가 안철수당으로 가더니, 민생당을 거쳐서 지난 지방선거에서는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해 다른 군소 후보들과 TV토론을 하는 장면을 애잔한 마음으로 지켜본 과거 동료들은 이제 <조선일보>에 등장해 민주노총을 욕하는 이수봉 씨를 보면서 여러 복잡한 감정이 들었을 것이다. 인터뷰 내용은 딱 <조선일보>가 듣고 싶은 이야기들만 고른 것 같았다.
"간첩단 사건은 팩트다. 북한의 구체적 지침을 받았다" "지금도 주사파가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민주당과 결탁했다. 서로 적당히 눈감아 주면서 이해를 채웠다" "북한의 대남 의식화 사업이 먹힌 것이다" "[총파업은] 북한의 핵무기와 똑같다" "민노총이 괴물이 돼 버렸다" "노동자가 주인이면 기업주는 노예가 된다" "마르크스 레닌주의에 근거한 노동운동" "이대로면 기업도, 나라도 망한다."
이런 주장들은 마치 고장난 라디오처럼 뻔한 레퍼토리여서 새롭지는 않았다. 진보좌파 출신이면서 등을 돌려 족벌언론들과 인터뷰에 나서는 사람들이 돌려보는 대본집이 따로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이렇게 지겨울 정도로 식상하지만, <조선일보> 등이 이런 기획을 끝없이 우려먹는 것에는 알다시피 이유가 있다.
'내부에서 함께 하던 사람들도 시민운동과 노동운동이 사회정의와 인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실은 위선적 사기꾼과 간첩들의 모임이라고 말한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예컨대 김경율 씨의 인터뷰를 실으면서 <조선일보>는 그가 '젊은 시절 화염병을 던졌고, 참여연대에 있었고, 삼성재벌과 싸웠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용기 있는 양심적 내부고발'이라고 포장한다.
하지만 이와 같은 프레임은 어처구니가 없다. 보통, 막강한 힘과 권력이 있는 집단의 내부에서 박해와 불이익을 무릅쓰고 목소리를 낼 때 '양심적 내부고발'로 볼 수 있다. 예컨대 검찰 내부에서 끝없이 목소리를 내고 있는 임은정 검사의 경우다. 반면에 민주노총과 진보단체들은 우리 사회에서 가장 큰 권력을 가진 윤석열 정부, 족벌언론들, 공안기관의 표적이 돼 있다.
이들에 대한 권력의 탄압과 공격을 도와주면서 기회나 자리를 얻는 것은 '양심적 내부고발'과 아무 관련이 없다. 그냥 사회적 강자에 대한 비양심적인 동조, 마녀사냥에 대한 측면지원, 과거 동료들의 등에 칼 꽂기라고 할 수 있다.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의 진보적 사회운동에 대한 공격을 정당화하기 위해 꼭 필요한 말들을 대신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국정원, 검찰, 족벌언론 기자가 하는 것보다 진보단체나 민주노총의 간부였던 사람이 하는 것이 훨씬 더 잘 먹힌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가 민경우 씨다. 민경우 씨는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문재인 정부를 "유사(類似) 주사파"라고, '한국진보연대'는 "주사파가 만든 통일 전선 조직"이라고 낙인찍었고, "주사파 활동가들이 노동운동을 하겠다며 택배 기사로 위장 취업한 뒤 노조 핵심 간부가 됐다"라고 민주노총을 '고발'했다.
이것은 '범민련' 간부 출신이라는 그의 전력 때문에 더욱 신빙성을 얻는다. 더구나 <조선일보> 등에게 더 반가운 것은 책임지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이다. '민주노총과 진보단체들이 사실은 주사파와 간첩들의 소굴이고 내부에서 이런 부조리들이 저질러지고 있다'는 인터뷰를 실은 다음에 문제가 되면, 우리는 저 사람이 한 말을 믿고 실었을 뿐이라고 빠져나가면 된다. '아니면 말고'와 '카더라'를 자연스럽게 가능하도록 만들어주는 방식이다.
궁금해지는 것은 왜 이처럼 시민운동이나 노동운동에서 활동하다가 그 정반대 편으로 넘어가서 옛 동료들을 공격하는 사람이 계속 나타나는가인데, 요즘의 당사자들은 대부분 '조국과 윤미향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즉 '그들의 비리와 위선을 보면서 충격과 환멸을 느껴서 진보좌파의 내부 문제들을 고발하기 시작했다'는 논리인데 설득력 없는 핑계로 들릴 뿐이다.
몇 년이 지나도록 계속 '조국과 윤미향' 타령을 우려먹는 것도 어색하지만, 이들이 문제 삼는 두 사람의 문제점이나 혐의들은 검찰 수사와 법원 판결에서도 상당 부분 사실무근으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렇게 변신한 사람들은 단지 진보좌파 진영의 이중성과 부족함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정치적 포지션 자체를 보수우파적 입장으로 변화시켰다.
이들이 문재인 정부를 "한국 역사상 최악의 정권"(민경우) "포퓰리즘의 끝을 보여준 문재인 정부"(한지원)라고 하면서 주되게 비판하는 이유도 최저임금 인상, 검찰 개혁, 부동산 규제와 과세, 탈원전 정책, 대북 화해 정책 등에 있다. 전형적으로 보수우파들이 문재인 정부를 반대하던 이유들이고, 결국 이들은 진보좌파 진영에서 등을 돌리고, <조선일보>와 인터뷰하고, 윤석열 정권을 지지하는 쪽으로 이동했다.
예컨대 한지원 씨는 '마르크스주의 좌파'를 자처하다가 지난 대선 때 윤석열 후보와 "각론 차이를 접어두고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합쳐야 한다"라고 나섰고, 이것을 "포퓰리즘을 막기 위한 제2의 국공합작, 반포퓰리즘 연대"라고 불렀다. 심지어 최근 윤석열 정부의 '69시간 노동제'와 '강제동원 피해자 외면 한일 야합'에도 불구하고 "방향은 틀리지 않았다"며 변호해주고 있는 상황이다.
동시에, 한지원 씨는 "[윤석열]의 자유민주주의가 이재명의 리바이어던보다 한국 사회에서 차라리 낫다는 점 하나는 분명해 보인다"거나, 미국 주도의 세계 질서가 "현실 세계에서 작동 가능한 유일한 질서"라고 주장한다. 즉, '친북 주사파 운동권들과 그 영향을 받는 민주당보다는 차라리 자유민주주의와 한미동맹을 지키려는 보수우파가 낫다'는 논리를 보여준다.
이것은 과거 냉전 시대에 미국과 서유럽에서 소련식 사회주의를 대안으로 여기던 좌파들이 그 환상이 깨지면서 180도 방향을 바꾸어 냉전우파로 변신하며 매카시즘에 동참하고 공화당으로 유입되던 과정과 유사한 점이 있다. '먹고살기 위해서, 춥고 배고프던 곳에서 따뜻하고 배부른 곳으로 가는 것'이라며 그런 변신을 설명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이다.
물론 진보적 사회운동 내부의 어떤 문제점들이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돌아서서 선을 넘게 만들었는지 돌아볼 필요도 있다. 자존감과 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할수록,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자신의 가치가 기대만큼 인정받지 못할 때 쉽게 등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이 과정에서 과도한 비판과 상처받은 자존심과 고립감은 등을 떠미는 효과를 낸다. 아무튼, 다음번에는 또 어떤 사람이 <조선일보>의 지면에 깜짝 등장할 것인지 그만 걱정하고 싶다.
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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