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부터 허물어진 정진상 재판… 유 "금액·출처 기억 못 해"
'9천만 원' 진술 변경, 형량 거래 가능성
유 "남욱에게 받은 것"…1분 뒤 "잘 몰라"
유 "1천인지 5백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뇌물 수수'에서 '공여'로… 공소시효 넘어가
정진상 전 민주당 대표실 정무실장에 대한 뇌물 혐의가 근본부터 허물어졌다.
"명절 떡값을 줬다"는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 혐의의 기초 사항’인 ’ 금액과 출처’에 대해 제대로 답변하지 못한 것이다. 이는 혐의에 대한 ’ 입증’의 단계가 아닌 ’ 주장’의 단계부터 허물진 것을 뜻한다.
9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정 전 실장에 대한 13차 공판에서 유 전 본부장은 "2013년 추석과 2014년 설날에 ’ 명절 떡값’ 1천만 원을 남욱에게 받아서 준 게 맞느냐"는 정 전 실장 측 변호인의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했다. 이 질문은 뭔가 새로운 것을 확인하려는 심각하고 예리한 질문이 아니라, 마치 재판 첫 단계에서 이름·생년월일·주소 등을 묻는 ’ 인정신문’처럼 혐의의 기초적인 사항을 확인하는 질문에 불과한 것이었다.
유 "남욱에게 받은 것"…1분 뒤 "잘 몰라"
이날 열린 공판은 유 전 본부장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세 차례 연기된 뒤 3주 만에 열린 공판이었다. 입원 직전 "2013년 설 전에 남욱으로부터 받은 2천만 원 중 1천만 원은 정진상에게 준 게 맞는데, 나머지 1천만 원은 김용을 줬는지 내가 썼는지 잘 모르겠다"는 폭탄 진술로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혐의를 흔들어놓은 유 전 본부장이, 3주 만에 열린 공판에서 정진상 전 실장에 대한 혐의도 기초부터 흔들어놓은 것이다.
이런 상황은 정 전 실장 변호인이 지난 공판에서 있었던 2013년 설 떡값 진술을 상기시킨 뒤 2013년 추석과 2014년 설 떡값에 대해 확인하는 과정에서 시작됐다.
변호인(이하 ’ 변’) 13년 추석, 14년 설 정진상에게 준 1천만 원 떡값은 남욱에게 받아서 준 건가요?
유동규(이하 ’ 유’) 네.
변 김용은 안 줬나요?
유 언제요?
변 떡값 줄 때 정진상은 줬는데 김용은 안 줬어요?
유 김용에게 명절 떡값 줬습니다.
변 한 번은 줬는지 안 줬는지 모른다고 증언한 것 아닌가요?
검사 설, 추석 등을 명확하게 구분해서 질문해 주십시오.
변 알겠습니다. 명절이 세 번입니다. 13년 설 빼고, 13년 추석과 14년 설 각 1천만 원씩 2천을 남욱에게서 받은 돈으로 줬다는 거죠?라고 물으니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맞습니까?
유 (갑자기 한참을 생각하다) 13년 설은 남욱한테 받은 게 확실하고요…
이후 유 본부장은 무슨 이유인지 답변을 하지 못한 채 침묵을 이어갔다. 그러자 재판장이 질문을 시작했다.
재판장(이후 ’ 재’) 당시 남욱 이외에 업자에게 명절이라고 2천이나 1천 받을 루트가 있었나요?
유 다른 사람은 없고, 돈을 빌렸을 사람은 있습니다. 빌린 사람이 있기는 합니다.
재 13년 설에 2천을 남욱에게 받아서 떡값을 주고, 13년 추석 때는 재원이 어디였는지 기억하나요?
유 추석마다 제가 조금이라도 챙겨줬고요. 늘 챙겨줬습니다.
재 아니, 그 얘기가 아니라, 누구한테 받았는지 재원을 묻는 겁니다.
유 하도 여러 번이라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납니다.
정 전 실장 변호인은 2022년 1월 13일 자 유 전 본부장의 검찰 피신조서에서 "2013년 설과 추석, 2014년 설에 남욱에게서 1천만 원을 받아 정진상에게 줬다"라고 진술한 부분을 제시해, 검찰 최초 진술에서 "남욱에게 받았다"라고 진술하고 이날 법정에서도 그렇게 답변했다가 곧바로 "기억 안 난다"라고 진술을 바꾼 것을 확인시켰다.
유 "1천인지 5백인지 정확히 모르겠다"
유 전 본부장이 혐의의 근본을 흔드는 태도를 보이자 정 전 실장 변호인은 "1천만 원 준 것은 맞냐?"라고 묻기 시작했다. 이것은 어떤 중학생이 인수분해 문제를 풀지 못하고 쩔쩔 매자 "너 혹시 구구단은 아니?"라고 묻는 차원의 질문이었다.
변 13년 추석에 1천만 원 준 거 맞아요?
유 맞을 겁니다.
변 맞을 겁니다가 아니라요. 기억이 안 나면 안 난다고 답을 해야죠. 생각이 아니라 기억을 묻는 겁니다.
유동규는 다시 답변을 못한 채 침묵을 이어갔다. 재판정에는 팽팽한 정적이 흘렀다. 한참을 기다린 뒤 재판장이 입을 열었다.
재 (속기사에게) ’한참 생각하다 답변 못함’이라고 기록해 주시고, 변호인 질문 계속해주세요.
변 14년 설은 어떤가요? 1천만 원 확실한가요?
유 제가 1천만 원씩 봉투에 넣어서 준 것은 확실합니다.
변 제가 여쭤본 거는 14년 설이 맞는가예요. 정확하게 기억나시는지.
유 14년 설에… 설마다 제가 5백이든… 여러 번이라서, 제 돈으로 줄 때도 있고, 챙겨서 줄 때도 있어서 정확하게, 준 것은 맞는데요, 1천씩 준 거는…
변 1천인지 5백인지는 기억나나요?
유 잘 모르겠습니다.
변 이상입니다.
’ 물적 증거’는 전혀 없이 오로지 ’ 유동규 진술’이 유일한 증거로서 ’ 유동규 진술의 신빙성’이 핵심적인 심리대상인 이 재판에서, 단순히 확인차 물어본 기초적인 내용에 대해 유 전 본부장이 한참을 침묵을 지키다가 끝내 답변을 하지 못한 것은, 해당 혐의 자체가 부인되는 것은 물론 다른 혐의들에 대한 심리에도 크게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뇌물 수수'에서 '공여'로… 공소시효 넘어가
정 전 실장 변호인은 "2013년 4월 16일 모 유흥주점에서 남욱에게 9천만 원을 받아 미리 와있던 정 전 실장에게 전달했다"는 혐의도 검찰의 회유에 따른 허위 진술일 가능성도 제시했다.
변 증인이 정진상에게 9천만 원을 전달했다고 최초 진술한 게 언제인지 기억나시나요?
유 잘 기억 안 납니다.
변 조서 상으로는 22년 11월 22일입니다. 진술을 변경하게 된 여러 계기가 있었다고 했죠? 진술을 번복하기 시작한 22년 9월 이후 별다른 진술 변경이 없다가 2개월이 지난 11월이 돼서야 정진상에게 9천만 원을 줬다고 진술했습니다. 왜 그랬죠?
유 사실대로 다 얘기하려고요.
변 증인이 11월 22일 진술할 때 검사와 어떤 대화를 했는지 기억나나요?
유 대화는 기억 안 나는데 조서에 있는 대로 얘기했을 겁니다.
변 22년 11월 22일 피신조서를 제시합니다. 이때 보면 증인은 바로 전날인 22년 11월 21일 남욱의 법정 진술을 보고 정진상에게 9천 준 것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보이는데 맞나요? 여기 보면 검사 질문이 "대장동 공판에서 남욱은 피의자가 일식집에서 9천 받아 다른 방에 있는 형들에게 전달했다고 증언했는데, 증인도 공판에 참석했지요?"라고 돼있습니다.
유 네.
변 이 얘기는 뭐냐면 전날 남욱의 증언을 보고 검사가 거기에 맞게 제시하니까 정진상에게 9천 줬다고 진술한 거 맞죠? 자발적으로 기억해 내서가 아니라 전날 남욱의 증언을 듣고 검사로부터 질문받고 시인하듯이 진술한 거 아니냐는 얘깁니다.
유 사실 그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변 증인이 남욱으로부터 9천 받은 것은 분명하죠?
유 네.
2014년 4월 유 전 본부장이 남욱 변호사로부터 9천만 원을 받은 것은 유 전 본부장의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돼 있는 사안이다. 유 전 본부장은 이것을 "정진상에게 줬다"라고 진술함으로써 ’ 뇌물수수자’에서 ’ 공여자’로 위치가 바뀌었다. 뇌물수수는 공소시효가 10년인 반면 뇌물공여는 7년으로, ’ 뇌물수수’가 ’ 뇌물공여’로 바뀌면서 공소시효를 넘기게 됐다.
유 전 본부장이 뇌물수수로 기소돼 있는 대장동 재판에서는 대대적인 공소장 변경이 예정돼 있다. 이 공소장 변경에 ’ 9천만 원 뇌물수수’ 혐의가 포함되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공소장 변경으로 이 혐의가 제외될 경우 이로 인한 처벌에서는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소위 ’ 심경 변화’가 있은 후 두 달이 넘도록 아무 얘기 없다가, 대장동 재판에서 9천만 원에 대한 남욱의 진술이 있은 다음 날 검찰이 유 전 본부장을 조사하면서 이를 언급하고, 유 전 본부장이 곧바로 "정진상에게 준 것"이라고 진술을 바꾼 것은 이와 같은 ’ 형량 거래’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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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세상을 바꾸는 시민언론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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